[정명석 목사의 나만이 걸어온 길] 이런 밤이 다시는 오지 않기를

[정명석 목사의 나만이 걸어온 길]

이런 밤이 다시는 오지 않기를


정명석 목사가 군대 제대 후 그 이듬해인 스물여섯 살 때였다. 군에서 구사일생으로 20여 회 죽을 고비를 넘겨 살아옴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요 천명임을 깨닫고 노방 전도를 많이 하고 다녔다. 150리나 되는 전주와 70리 정도 떨어진 공주로 많이 다녔고 80리 정도 떨어진 대전 지역에도 나갔다. 어느 때는 12km 떨어진 금산으로 나갔고 4km 떨어진 대둔산 관광지나 진산에도 나갔다. 처음엔 금산과 대둔산같이 가까운 곳을 주로 걸어 다니며 전도를 했다. 그땐 너무 자주 나갔기 때문에 교통비가 없었다.
좀 떨어진 전주나 대전과 같은 곳에 전도하러 나갔다가 집에 들어오면 새벽 3시쯤 되었다. 100리 길 혹은 150리 길은 60km나 되는 길인데도 정명석 목사는 걸어 다녔다. 차로 가도 1시간이나 걸리는 거리였다. 그때만 해도 통행금지가 있던 시대였다. 밤 12시가 되면 노점상인 혹은 시내 모든 사람의 발길이 끊기게 되니 그때가 되면 결국 전도 일을 끝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자갈길 비포장 길을 급히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낮에는 일을 해야 하는 농촌의 삶이고 신앙생활만으로는 끼니를 이어갈 수 없었기에 정명석 목사는 아침이 되기 전에 급한 마음으로 발길을 돌렸다. 호랑이 같은 아버지가 신앙을 반대할 때이고 어머니 역시 정명석 목사가 하는 일을 이해 못 할 때였다. 어느 부모라 해도 그 당시 정명석 목사의 일은 반대하였을 것이고 이해 못 하여 산이 울리도록 고함을 쳤을 것이다.
한 번은 정명석 목사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 전도를 마치고 진산을 거쳐 성황당 소롯길   앞섶골 재를 홀로 걸어 넘어오고 있을 때였다. 밤에는 온몸이 오싹거리는 밤길을 마치 스님이 주문을 외우듯 성경을 외우며 찬송도 하면서 걸었다. 그때 성황당 소롯길은 30년 된 낙엽송과 소나무로 밀림이 우거져, 혼자 걸으면 낮에도 머리끝이 조금씩 설 정도였다.
나무가 없는 요즘도 그 큰 고개를 넘을 땐 인가 한 채 없으니 밤에는 물론이고 낮에도 무서운 산길이었다. 게다가 이 고개를 넘을 때 호랑이를 보았다는 마을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꽤 들었기에 밤에 이 길을 오르내리면 삐쭉삐쭉 머리끝이 섰다.
그 날 밤 열나흘 달은 중천에 떠 나무 사이로 비치고, 죽은 자의 넋을 달랜다는 산비둘기까지 울고 있었다. 정명석 목사는 큰기침도 하고 큰소리를 지르면서 그 큰 고개를 올라오고 있었다. 성황당 나무 정자 정상을 20미터쯤 남겨 놓고 “얼마나 남았나?”하고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옛 어른들은 밤길을 걸을 때 땅만 내려다보고 걷는다고 했지만 정명석 목사는 밤에 산길을 세상에서 두 번째 가라 하면 서러울 정도로 많이 걸어 다녔기에 문제없었다. 오히려 정명석 목사는 자신을 두고 밤 호랑이라고 자부하기도 했다.
앞섭골 정상 성황당에는 옛날에 큰 벼슬을 했던 사람이 심었다는 300년이나 된 팽나무가 서 있고 그 밑에 큰 넓적 바위가 깔려 있었다. 열나흘 달빛은 휘영청 부서져 내리고 가을이 무르익어 가고 있는 밤이었다. 달 그늘 아래로 정상을 퍼뜩 쳐다보았다.
 “휴! 이제 20m 정도 남았구나.” 100리 길도 넘는 먼 길을 벌써 다 온 것이었다. 그런데 그 성황당 나무 밑 넓적 바위 위에 누군가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이 새벽 3시에 누가 저렇게 쭈그리고 앉아 있지? 밤길 가다 앉아 있는 것인가?” 하고 약간 무서운 마음으로 대여섯 발자국을 더 걸었다. 그때 정명석 목사의 마음에 이상한 전율이 흘렀다. 다시 쳐다보았다.
자세히 보니 사람이 아니고 아주 큰 짐승이 쭈그리고 앉아서 달밤에 걸어오는 정명석 목사를 쳐다보고 있었다. 달빛에 자세히 보니 쭈그리고 앉아 있는 키가 꽤 컸다. 꼼짝도 하지 않고 주인을 맞는 말만 한 개처럼 앉아서 담대히 정명석 목사를 쳐다보고 있었다. 하늘과 산이 맞닿은 선에 의해 보니 확실하고 또렷한 몸집의 짐승이었는데 몸집은 컸지만 날씬하였다.


그때 천천히 걷다 발길을 멈추고 말았다. 그 순간 정명석 목사에게 영감이 왔다.
“앗! 호랑이로구나.”
평소에 어머니께서 “너 밤길을 그렇게 걷다가 언젠가 호랑이를 만날 거다.” 했던 말이 번뜩 떠올랐다.
‘그 날이 이 날이었구나. 거미줄에 매미 걸리듯 난 걸렸구나. 하지만 아직은 덜 걸렸어. 문제를 해결해야지.’ 생각했는데 예상치 않던 고함이 나왔다. “앗! 앗! 으악!” 그런데 그 소리가 속으로만 나왔다. 땀이 계속 났다. 그야말로 뜨거운 비지땀이었다. 옷이 젖어 버렸다. 뒤로 돌아서려고 발길을 옮기려 하였지만, 발이 천근 쇳덩이를 매단 것처럼 땅에서 떨어지지를 않았다.
그때 하나님이 생각났다. “하나님, 하나님!” 역시 그 소리도 속에서만 났지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정말 심장이 놀라고 간이 콩알만 해지는 순간이었다. 이 위기를 피할 길이 없었다. 담대히 하나님을 부르며 앞으로 걸어가려 하였지만 앞으로도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앞을 보니 몸을 움직이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있는 호랑이의 모습이 그대로 보였다. ‘이제 걸어 내려오나 보다.’ 방어하고 싶어도 무기가 없었다. 정명석 목사가 손에 쥔 것이라고는 전도지 밖에 없었다. 만약 손에 몽둥이나 총이 있었어도 이미 마음이 꺾여 움직여지지 않아 다 소용이 없었다.
결국, 호랑이가 어떻게 하나 쳐다만 보고 말뚝처럼 서 있었다. 정말 장승같이 우뚝 선 채 마음만 살았지 몸은 시체였다. ‘달빛이 구름으로 다 들어가 버렸으면 호랑이도 안 보일 텐데…’ 했지만 무서우니 정신이 차려지고 더 잘 보이기만 했다.
정명석 목사는 기도했다.
“하나님 저 호랑이 좀 속히 끌고 가 주십시오. 하나님밖에 이 밤중에 내 문제를 해결할 분이 아무도 없습니다. 내가 죄를 지었으면 다음에 회개하겠습니다. 지금 회개할 시간이 없습니다. 이 떨리는 마음에 지은 죄가 생각도 나지 않습니다. 제발 저 호랑이 좀 속히 없애 주옵소서.”
혹시 호랑이가 걸어 내려오지 않을까 해서 눈을 뜨고 기도했다. 너무도 짧은 기도였다. 그런데 그때 호랑이가 일어나 정상에서 반대쪽으로 넘어가 없어져 버리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정명석 목사에게 무서움이 사라지면서 힘과 담대함이 왔다. 소리를 지르니 소리가 입 밖으로 나왔다. 힘을 다해 나머지 20m를 올라왔다. 온몸에 땀이 줄줄 흘러 옷이 비 맞은 것 같았다. ‘아니 사람 몸에 이렇게 땀이 많단 말인가.’ 하고 또 하나를 깨달았다. ‘인간 몸에 때도 많고 땀도 많구나.’ 그제야 정명석 목사는 호랑이한테 놀라면 옷이 땀으로 비 맞은 듯이 젖고 사족이 굳어 버린다는 말을 체험케 되었다.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라더니 하나님이 나로 호랑이 체험을 뜨겁게 시킨 것인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왜 나에게 이런 밤을 주었을까?’ 정명석 목사는 평소 정상에 오르면 앉던 넓적 바위 위에 앉았다. 힘이 빠지고 그야말로 맥이 풀려 버렸다. 기력이 백 살이나 먹은 노인이 된 것 같아 잠깐 누웠다. 그 자리는 바로 아까 호랑이가 앉아 있었던 반드름한 장소였다. 순간 잠이 들어 버렸다. 눈을 떠보니 4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일어나 400m밖에 남지 않은 집으로 걸어 내려갔다. 다리가 후들거려 제대로 걸어지지 않았다. 정명석 목사는 다시는 이런 밤이 없기를 기도하며 집을 향해 갔다.
정명석 목사는 그 모든 일이 추억으로 남아 ‘나만이 걸어온 그 길’을 쓰게 되었고, 제자들에게도 이야기를 해주게 되었다. 그 체험에 감동한 제자들은 후대에 귀한 간증거리가 되게 하자며 하나님께 기도와 찬양으로 영광 돌렸다. 
“아! 그 날 밤 나만이 걸어온 사망의 음침한 계곡이어라!” 하지만 그 호랑이 사건은 하나님께서 정명석 목사에게 목자가 되어 주를 영원히 전하는데 위대한 간증거리가 되었다. 간증할 수밖에 없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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